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란 조끼 운동 (문단 편집) == 배경 == [[프랑스 정부]]가 환경오염을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경유 유류세를 '''23%p''', [[휘발유]] 유류세를 '''15%p''' 인상하겠다고 밝힌 것이 시위의 발단이 됐다. 유류세는 대표적인 [[http://naver.me/GorTdjbi|역진세]]다. [[석유]]는 세금을 높인다고 해서 소비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조세부담이 강해진다. 정부는 대신 디젤차를 전기차로 바꿀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당근을 제시했지만 당장 기름값에 일희일비하는 서민들에게 전기차 구입은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프랑스처럼 전후 [[사민주의]]적 분배 정책을 도입한 유럽 대륙의 복지 국가들은 큰 정부를 통해 사회안전망과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는 대신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임금은 그대로고 전통적인 직장들은 다 아웃소싱되는 문제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나라들은 심각한 경제위기로 이미 폭탄이 터졌고 프랑스인들도 위기감을 느끼단 와중에 '''하늘에서 목돈을 툭 마련해서 전기차 한대 뽑아라''' 같은 주문을 한 정부에게 분노가 터졌다.] 특히 생계를 위해 차를 구입하는 저소득층은 차량 구입에 있어서 대출이나 할부가 끼어 있어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이 "이런 쓸데없는거 거둔 유류세로 해주지 말고 기름값이나 내려줘라."였다. 이것이 1차 노란 조끼 시위로부터 몇 주 전의 일이다. 그러나 유류세 인상은 분노가 촉발된 계기였을 뿐 마크롱의 친기업 정책이 야기한 빈곤과 불평등으로 누적된 불만이 진짜 원인이었다. 그는 장관을 했던 올랑드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적으로는 친기업 정책을 펼쳤는데 그런 상황에서 직속 측근 보좌관인 베날라가 노동절 시위현장에서 직접 경찰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시위자를 [[https://twitter.com/T_Bouhafs/status/991381135631486976|구타]]하는 영상이 찍히는 베날라 스캔들이 터지면서 그 비판이 더욱 커졌다. 마크롱은 측근인 베날라가 이 사태를 일으켰을 때 처음에 15일의 근신 처분만으로 사건을 묻으려고 했고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커지자 그제서야 해임 처리했다. 그러나 해임 처리 이후에도 비난여론에 대해 "(책임자인) 나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 것이다(Qu'ils viennent me chercher)"는 도발적인 트윗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사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아 비난 여론을 더욱 키웠다. 특히 마크롱 정부는 고소득층에게 주로 적용되는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를 대폭 감세해 줬는데 저소득층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유류세를 대폭 증세시키면서 저소득층의 불만을 자극한 데다 더 나아가서는 공공부문개혁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공무원 및 공기업 직원 감축을 진행함에 따라 관련 노조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철도 노조를 주 타겟으로 하였는데 이에 대해 철도 노조는 이틀에 한 번씩 파업을 행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처음에는 철도 노조의 파업에 대한 시각이 엇갈렸지만 마크롱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노란 조끼 운동이 벌어진 시점에선 파업에 대한 찬성 여론이 상당히 높아졌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지방공무원들까지 합세했다 보니 지방경찰들이 시위에 합류하여 [[프랑스 경찰|국가경찰]]과 시위자로서 마주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류세 증세에 대한 저항을 시작으로 복지 감축 등에 영향을 받은 빈곤층과 직접적인 개혁으로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게 생긴 공무원들, 부유세와 자본소득세 감세로 인해 부유층만 혜택을 보는 현실에 절망한 중산층까지 마크롱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에 합세했다. 결국 마크롱 정부는 빠르게 지지율이 떨어져 2018년 12월 초 기준으로 지지율이 20%대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마크롱의 경제개혁안이 프랑스의 경제지표 개선이라는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나자 최소 프랑스에선 노란 조끼 운동이 빠르게 와해되었다. 그들이 반대하던 마크롱의 개혁안으로 경제가 회복된 만큼 시위의 명분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있다. 마크롱 정부는 한때 20%대 지지율로 허덕였으나 경제와 함께 지지율도 회복되어 40%로 회복했지만 노란 조끼 운동 이후 마크롱의 비호감 이미지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